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피에르 트뤼도 (문단 편집) === 총리로서 === 2차 대전 이후 캐나다 사상 최장 기간 집권 총리로 군림했던 피에르 트뤼도는 대외적으로는 [[베트남전]] 참전 반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와 관계 진전 같은 행보로 미국과 마찰을 빚으면서도 국제적으로 미국과 붙어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온건한 캐나다란 이미지를 일구어 냈다. 다만 선거로 보면 약간 곡절이 있는 편으로 1972년 총선에서는 1기 집권기때 정책에 대한 평가가 썩 좋은것이 아닌데다가 선거캠페인도 실패하여 [[캐나다 진보보수당]]을 겨우 2석 차이로 이기기도 했고(109 VS 107) 1974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절정을 달했기는 했지만 1979년 총선에서는 온타리오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득표율에서 앞서고도 선거에서 패배하는 웃지못할 일을 겪었다.[* 딱 40년 뒤인 2019년 총선에서 똑같은 일이 다시 한 번 벌어져, 이번에는 [[캐나다 보수당|보수당]]이 득표율 1위를 달성했지만 '''또 [[온타리오]]에서 대패'''하는 바람에 [[캐나다 자유당|자유당]] 내각이 살아남는다. 1979 총선의 리버스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2019 총선에서 살아남은 총리는 [[쥐스탱 트뤼도]]. --아버지를 끌어내린 단순다수제 선거법 덕에 정권연장에 성공한 아들--] 물론 1980년 재선거에서 이기기는 했다. 내부적으로도 [[68 혁명]]의 조류를 탄 사회적 자유화의 물꼬를 틀면서 현대 미국과 가장 큰 차이점인 각종 공공 복지 시스템 도입 뿐만 아니라, 본인의 고향이자 정치적 토양인 [[퀘벡]]의 문화적 독자성과 정체성은 장려하면서도 정치적으론 오히려 분리주의를 막았고, FLQ 같은 과격 분리주의 테러단체들을 진압하면서 '''캐나다란 국가적 틀 안에서 독자적 민족 정체성을 가진 퀘벡인'''이란 현대의 구도를 만들어낸, 근현대 캐나다의 정치적 정체성을 반쯤은 혈혈단신으로 일구어낸 업적을 남겼다. 한편 거의 영국에서 독립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캐나다를 명목상으로도 독립시켰다. 1982년에 캐나다 법(Canada Act)을 [[영국 의회]]와 캐나다 의회에서 통과시켜 명목상 영국 의회가 가지고 있는 [[권리자유헌장|캐나다 헌법]] 개정 승인 권한을 없앤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